5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성모님의 간절한 메세지 시리아 다마쿠스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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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분쟁 지역 시리아에서 펼쳐진 놀라운 성모발현 슈파니에는 가톨릭과 동방정교회의 화합을 위한 성모님의 간절한 메시지가 담긴 특별한 성지입니다. 1982년부터 미르나 나자르에게 나타나신 성모님은 성화에서 흘러나오는 향유와 오상의 성흔을 통해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이슬람권 내에서 일어난 이 발현은 동서 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강조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향유향이 가득한 다마스쿠스의 작은 집에서 시작된 이 신비로운 여정은 종교적 갈등을 넘어 하나의 신앙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좋겠습니다. 저는 시리아인 친구가 있어 15년 전에 방문했는데 지금은 연락도 안 닿네요. 제발 어딘가에 건강하게 살아있기를 빌어봅니다. 미르나 나자르와의 만남 다마스쿠스의 향유 2019년 10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방문했을 때 저는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전으로 피폐해진 도시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 소파니에 지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기원전부터 이어져 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다마스쿠스의 일부로 성 바오로의 회심이 일어난 성경적 배경을 가진 곳이기도 합니다. 미르나 나자르의 집은 평범한 외관을 가진 2층 건물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은은한 향유 향기가 저를 맞이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파니에 향유라고 불리는 기적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이 집의 거실 한쪽 벽에는 작은 성모자 성화가 걸려 있었는데 바로 이 성화에서 1982년 11월 27일부터 기적적으로 향유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미르나는 1964년생으로 발현 당시 18세의 평범한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였고 그녀의 남편 니콜라스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미르나는 웃는 얼굴로 저를 맞이하며 그날의 일을 설명했습니다. 11월 22일 제 시누이의 집에서 기도하던 중 갑자기 제 손에서 올리브 오일 같은 향유가 흘러나왔어요. 며칠 후 우리 집의 이 작은 성화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죠. 미르나의 손에서 흘러나온 향유는 때로는 그녀의 몸 ...

미국 위스콘신 주 그린베이의 굿 헬프 성모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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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유일하게 교황청으로부터 공식 인정받은 성모발현지인 위스콘신 주 그린베이의 굿 헬프 성모 성지는 150년이 넘는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벨기에 이민자 아델 브리스에게 나타나신 성모님의 교육 사명과 평화의 메시지가 살아 숨 쉬는 이곳에서 미국 가톨릭의 뿌리와 신앙의 여정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가서 차로 4시간 정도를 이동해야 하는 가는 길이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만족스러운 성스러운 성지순례였습니다. 경이로운 발현과 아델 브리스의 이야기 1859년 가을 미국 위스콘신 주 그린베이 근처 챔피언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당시 28세였던 벨기에 이민자 아델 브리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0월 초 어느 날 아델이 곡식을 가지고 제분소로 가는 길에 두 여인 사이에 흰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워 집으로 달려갔지만 다음 주일 미사 후 같은 장소를 지나갈 때 다시 그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은 누구시며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여왕이다. 나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성교리를 가르치도록 너를 부르러 왔다. 그들이 거룩한 미사에 가도록 하고, 성체를 영하게 하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라. 이 사명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여기서 많은 회개가 일어날 것이며 나는 항상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아델은 즉시 이 사명을 받아들였고 그날부터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주변 지역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집집마다 방문하며 가르쳤고 나중에는 그녀의 아버지가 발현 장소 근처에 작은 예배당을 지어주어 많은 아이들이 그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델의 신앙과 헌신은 선교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는 보스턴의 세자매라고 불리는 수녀들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설립했으며, 이후 그녀와 몇몇 여성들은 제3회 프란치스코회 수녀가...

아시아 유일 공식 발현지 일본 아키타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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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교황청이 공식 인정한 유일한 성모발현지인 일본 아키타인데 우리나라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매번 미루다 지난해 다녀왔답니다. 눈물을 흘린 목각 성모상과 신비로운 발현 메시지가 담긴 이곳은 동양의 루르드라 불리며 수많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 특별한 성지였고 앞으로 자주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일본 북부의 평화로운 도시에 자리한 아키타 성모발현지로 떠나는 영적 여정을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아키타 성모 발현의 역사와 배경 일본 북부 아키타현 소토메초에 위치한 예수 성심의 종 수녀회 수도원은 1973년부터 1981년까지 일어난 성모발현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발현은 한 수녀의 기적적인 치유와 목각 성모상의 눈물로 시작되었습니다. 1973년 6월 12일 사사가와 아그네스 수녀는 완전히 귀가 먹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성체조배 중 갑자기 왼쪽 귀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이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치유였습니다. 그 직후인 7월 6일 수녀는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왼손에 심한 통증을 느꼈고 손바닥에 십자가 상처인 성흔이 나타났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1975년 1월 4일에 시작되었습니다. 수도원 성당에 모셔진 은총의 성모 목각상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눈물은 1981년 9월 15일까지 총 101회에 걸쳐 목격되었으며 약 2,000명이 이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과학적 분석 결과 이 눈물은 인간의 눈물과 동일한 성분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1975년 7월 6일에는 성모상에서 피와 땀이 함께 흘렀고 상에서는 장미향이 퍼졌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의학이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사건이었습니다. 아키타 성모님의 메시지와 의미 아키타 성모발현의 핵심은 세 번에 걸쳐 사사가와 수녀에게 전달된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들은 현대 세계에 대한 경고와 회개의 촉구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메시지는 1973년 7월 6일 내 딸아 내 수녀야 너는 잘 순명했다. 병은 너에게 고통을 주었지. 하지만 너는 인내했다. 더 이상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고통...

캐나다 그린사이드 농장의 성모 발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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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에서 북동쪽으로 2시간 온타리오주 마르모라 마을 외곽의 작은 농장에 이르렀을 때 내 심장은 기대감으로 두근거렸습니다. 캐나다와 미국 전역에서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찾는다는 그린사이드 농장은 첫눈에 특별할 것 없어 보였지만 도리 탄이라는 필리핀계 이민자 여성이 32년 동안 성모 마리아를 만나온 곳이라는 이야기에 이끌려 온 순례자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며 언덕을 오르자 차가운 가을바람이 말을 막았으며 열 번째 처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흰옷을 입은 도리 탄이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서 있던 자리에 고요히 다가갔습니다.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고 순간 전혀 다른 음색으로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순례자들이 무릎을 꿇고 묵주를 꺼냈습니다. 붉은 석양이 지는 들판 위로 어떤 이들은 태양이 맥동하며 회전하는 것을 또 어떤 이들은 태양 속에 성모의 모습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농장 샘물을 따라 담은 작은 병이 내 손에 쥐어졌으며 이 보잘것없는 곳에서 무수한 기적의 이야기가 피어나는 순간, 믿음과 의심의 경계에서 무언가 더 깊은 평화가 내 안에 자리 잡은 뜻깊은 순례길이었습니다. 그린사이드 농장의 성모 온타리오주의 작은 마을 마르모라 토론토에서 약 19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린사이드 농장은 캐나다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성모 발현지 중 하나입니다. 이 발현의 역사는 흥미롭게도 어린 소년의 순수한 기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약 45년 전 현재의 그린사이드 농장이 있는 곳에는 클레멘스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가족의 어린 아들 칼 클레멘스는 마을에서 상영된 파티마의 성모 영화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화를 본 후 그는 농장 뒤편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 성모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곳 파티마에서 나타나셨어요. 왜 여기서도 나타나시지 않으세요?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을 더 잘 알게 될 텐데요. 세월이 흘러 칼과 그의 형제들은 성장하여 농장을 떠났고, 칼은 교직에 몸담다가 결국 사제가 되었...

마리아에게 바쳐진 도시 빌마리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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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빛이 세인트 로렌스 강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노트르담드봉스쿠르 성당의 돔을 비추는 순간 몬트리올의 오랜 별명 빌마리의 의미가 온전히 다가왔습니다. 380년 전 프랑스 개척자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바친 이 도시는 오늘날까지도 깊은 마리안 영성을 간직하고 있었고 세인트 폴 거리를 따라 걸으며 올드 몬트리올의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17세기 수녀 마르그리트 부르주아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녀가 지은 선원들의 성당'에 들어서니 천장에 매 달린 작은 배 모형들이 세월의 흐름을 초월한 신앙의 증거로 저를 맞이하며, 성당 뒤편에서 만난 미크맥 원주민 노인은 이곳은 문화가 만나는 곳이라며 성모님이 다양한 민족의 화합을 위해 이 땅을 선택하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몬트리올의 상징인 마운트 로열 언덕 위 성 요셉 성당의 거대한 돔 아래서 개척 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마리아 도시의 유산이 내 영혼에 깊은 울림을 간직한 채 성지순례를 마쳤습니다. 마리아에게 바쳐진 도시 빌마리의 탄생 몬트리올은 북미에서 드물게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져 설립된 도시입니다. 1642년 5월 17일 폴 드 쇼메디 드 메종뇌브와 잔 망스가 이끄는 약 40명의 프랑스 정착민들이 세인트 로렌스 강가에 도착하여 빌마리라는 이름의 정착지를 세웠습니다.이 정착지 건설은 단순한 식민지 확장이 아닌 종교적 사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몬트리올 노트르담 협회라는 단체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는 성모 마리아의 보호 아래 원주민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고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몬트리올의 초기 역사는 종교적 열정과 개척 정신이 결합된 독특한 사례입니다. 당시 이 지역은 이로쿼이 원주민들의 영토였으며  프랑스 정착민들은 수많은 어려움과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메종뇌브와 그의 동료들은 이 모든 시련을 성모 마리아의 중재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몬트리올이 성모 마리아에게 특별히 헌정된 도시라는 사실은 초기 정착민들의 일기와 기록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메종뇌브는 16...

빛의 실루엣 멤버투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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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나이스 사이먼의 소박한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날의 특별함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이 주 전부터 수백 명의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침실 문을 열자 작은 제단으로 변한 공간에서 로사리오 기도 소리가 울려 퍼졌고 벽 한쪽에 희미하게 드러난 실루엣은 분명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었습니다. 백인과 원주민이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상처가 치유되는 듯했으며 뱃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왔습니다. 뭔가 가슴 벅찬 느낌이 들었답니다. 드나이스의 할아버지 사진 옆에 나타난 성모님은 400년 전 이 대륙에 첫발을 디딘 가톨릭 신앙과 원주민의 만남을 상기시키는 듯했고 저녁이 되자 전등을 끄자 벽의 실루엣은 더 선명하게 빛나는 것 같았습니다. 미크맥 언어와 영어가 섞인 기도 소리 속에서 문화와 역사를 초월한 화해의 메시지가 내 가슴에 깊이 새겨진 정말 어렵게 찾아간 성지의 보람된 일정이었습니다. 원주민 공동체에 나타난 빛의 실루엣 2013년 1월 12일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케이프 브레튼 섬의 멤버투 원주민 보호구역 드나이스 사이먼이라는 미크맥 원주민 여성의 침실 벽에서 놀라운 현상이 목격되었습니다. 벽면에 성모 마리아의 실루엣처럼 보이는 30센티미터 크기의 하얀 형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드나이스는 처음 이 현상을 발견했을 때 의심스러운 마음에 여러 방법으로 검증을 시도했습니다. 벽을 문질러보고 빛의 반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등을 켰다 껐다 반복했습니다. 놀랍게도 방의 전등을 끄면 이 이미지는 더욱 선명하게 빛났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있어서 감정이 복잡했어요. 울고 싶었고 혼란스럽고 두렵기도 했죠. 하지만 곧 기쁨이 밀려왔어요.  오 세상에 그녀가 제 방에 오셨어요. 여기 계시다니요.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그게 복되신 성모 마리아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어요.라고 드나이스는 당시의 경험을 회상했습니다. 이 현상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성모 마리아의 실루엣이 나타난 위치였습니다. 벽에 걸려있던...

얼음다리의 기적 캐나다 케이프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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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로렌스 강이 조용히 흐르는 퀘벡의 작은 마을 캡드라마들렌에 발을 들이자 경건한 침묵이 마치 온몸을 감싸는 듯하였습니다. 북미에서 두 번째로 큰 마리안 성지인 이곳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했으며 웅장한 노트르담듀캡 바실리카의 첨탑이 하늘을 찌르고, 울창한 정원 사이로 난 순례자의 길을 따라 걸으며 1879년의 얼음다리 기적이 떠올랐습니다. 구석진 자리에 놓인 작은 석조 성당, 옛 성지에 들어서니 1888년 6월 22일 세 명의 증인 앞에서 눈을 뜬 마리아 동상이 고요히 나를 바라보는 듯했으며 200년 넘게 이어진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만든 길을 걸으며 이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찾은 평화와 치유의 순간을 내 안에서도 느꼈습니다. 로사리오의 여왕께 바치는 기도 소리가 성지 전체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캐나다의 가톨릭 역사가 생생하게 숨 쉬는 이 성스러운 땅에서 깊은 영적 감동을 체험했답니다. 얼음다리의 기적이 일어난 땅 케이프 성지 퀘벡주 트루아리비에르 지역의 캡드라마들렌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케이프 성지는 1888년에 설립된 북미 최대의 마리안 성지 중 하나입니다. 이 성지는 로사리오의 여왕케이프의 성모 마리아로 알려져 있으며 매년 43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캐나다의 국립 성모 성지입니다. 성지의 역사는 163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 지역에 도착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생 로렌스 강 근처에 작은 예배당을 지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694년 이 예배당은 석조 교회로 재건축되었고 이 교회는 현재 옛 성지로 불리며 성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성지의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1879년에 일어난 얼음다리의 기적입니다. 당시 노후된 성당을 대체할 새 성당을 짓기 위해 석재가 필요했지만 생 로렌스 강 건너편에서 석재를 운반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신자들은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며 도움을 청했고 놀랍게도 겨울이 끝나가는 3월에 강에 단단한 얼음다리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그 시기에 매우 비정상적인 현상이었으며 신자들은 이 얼음다리를 통해 석재를 운반하여 성당을 완공할 ...

신앙의 뿌리 캐나다 세인트 메리스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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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온타리오주 남서부의 작은 마을 세인트 메리스에 들어서자 템스강과 트라우트 크릭이 만나는 지점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이 영혼을 감싸 앉는 듯했습니다. 19세기 석회암 건물들이 즐비한 스톤타운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1859년의 그날을 잠시 떠올려봅니다. 성모정원의 오래된 너도밤나무 아래 앉아 잠깐 기도하니 다양한 문화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발현의 메시지가 내 안에 울려 퍼지는 듯했답니다. 기적의 샘물에 손을 담그자 북미 대륙 개척시대의 신앙이 생생하게 다가오고  순례자 센터에서 만난 원주민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선조들의 증언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놀라운 신앙의 여정을 체험했습니다. 캐나다의 초기 가톨릭 역사를 간직한 이곳에서 화해와 일치의 영성을 발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앙의 뿌리가 내린 북미의 성지 세인트 메리스 캐나다 온타리오주 세인트 메리스는 템스강과 트라우트 크릭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아름다운 마을로 주변의 석회암 건물들로 인해 스톤타운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립니다. 이곳은 1859년 북미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성모 발현 사례 중 하나가 일어난 은총의 땅이며 발현 당시 이 지역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 특히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가톨릭 신자들이 새롭게 정착하던 개척지였습니다. 성지의 중심에는 1960년대에 지어진 기념 성당이 있고 그 주변으로 성모 정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성당은 지역의 특산물인 석회암으로 지어져 캐나다의 자연과 신앙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당 내부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발현의 주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으며 정교한 목조 제단은 19세기 캐나다 이민자들의 신앙과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성지는 연중 순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5월부터 10월까지는 특별 순례 시즌으로 지정되어 많은 순례객들이 방문합니다. 최근에는 현대적 순례자 센터가 건립되어 다양한 언어로 영성 교육과 피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센터는 단순한 안내 시설을 넘어 다문화적 ...

포르투갈 발린호스의 성모 발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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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중부의 들판을 지나는 길에 사방으로 펼쳐진 올리브 나무들이 순례자를 반기는 곳. 파티마의 유명한 대성당에서 조금 벗어난 이곳 발린호스는 많은 이들이 스쳐 지나가는 숨겨진 보석 같은 성지입니다. 전 일부러 시간 내서 다녀왔어요. 대중교통을 타고 알주스트렐 마을에서 내려 작은 오솔길을 걷기 시작하자  매미 소리와 풀향기가 반기더라고요. 5월 말 경인데 더웠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다 보니 1917년 8월 19일 천국이 이 땅에 잠시 내려온 그 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성모상이 나타났습니다. 파티마 대성당의 화려함과는 달리 이곳의 소박한 아름다움은 진정한 영성의 깊이를 느낄 수 있으며 세계 각국의 순례자들이 붐비는 코바 다 이리아와도 다른 발린호스에서는 오로지 나만의 기도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한 농부가 건네준 올리브 열매를 손에 쥐고 루치아, 자신타, 프란시스코가 당시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성모님의 평화의 메시지가 지금 이 순간 내게도 전해지는 듯했답니다. 발린호스의 성모님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가장 유명한 성모 발현지는 코바 다 이리아이지만 많은 순례자들이 놓치는 중요한 발현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발린호스입니다. 이곳은 파티마 중심지에서 약 2km 떨어진 조용한 시골 지역으로 1917년 성모 마리아가 세 목동 아이들에게 나타나신 특별한 장소입니다. 발린호스 발현의 역사는 1917년 8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루치아 산토스와 그녀의 사촌 프란시스코 마르토, 자신타 마르토는 매월 13일 코바 다 이리아에서 성모님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8월 13일 이 세 아이들은 당시 우렘 지역 행정관의 명령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약속된 발현을 보지 못했습니다. 행정관은 아이들에게 성모 발현의 비밀을 말하라고 위협했고심지어 끓는 기름에 빠뜨리겠다고 협박했지만 아이들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아이들은 석방되었습니다. 며칠 후인 8월 19일 오후 세 목동 아이들이 가족의 ...